“누가 시 한 편도 외워 읊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다 하는가”
특강: 시 낭송 운동 60년
# 다음은 지난 3월 1일 우리나라 최대의 시 낭송 단체인
재능시낭송협회의 회원 250여 명을 대상으로 재능교육연수원에서 행한
시 낭송 운동 60년 기념 특강을 간추린 것입니다.
김성우
특강하는 김성우 명예시인
1. '시인만세' 시대
내목소리가 많이 잠겨 있지요?
제발 좀 시를 잘 낭송해 달라고 60년 동안 외쳤더니 목이 쉬어 버렸습니다.
대관절 시 낭송 운동이란 무엇이며 어째서 60년이냐.
나는 한국일보사가 창간한 최초의 시사 주간지 ‘주간한국’의 초대 편집장이던
1967년에 우리나라 신시 60년을 맞으면서 ‘시인만세’라는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당대의 유명 시인 32명을 서울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전신) 무대에 세우는
대대적인 시 낭송 퍼레이드였지요.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 외에도 작고 시인 명시 낭송, 시가곡, 시무용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곁들여 장장 3시간여 동안 3천 석을 가득 메운 관객을 매료시켰습니다.
이 때 도입한 색다른 메뉴가 일반 시민들의 시 낭송 콩쿠르였습니다.
이 콩쿠르에는 예선에 270명이나 참가해 예상 외로 호응이 컸습니다.
이 ‘시인만세’에서 일반 대중들의 시 낭송에 대한 관심과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열기가 시 낭송 운동을 발진시킨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1967년 '시인만세' 무대
1967년 '시인만세' 객석
그 때까지는 시 낭송이라면 광복 직후 성행했던 시인들의 자작시 낭독회이거나
TV가 없던 때라 라디오에서 가끔 성우들이 명시를 읽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첫 ‘시인만세’의 첫 시 낭송 콩쿠르는 시인이나 성우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처음으로 대중들을 상대로 시를 낭송한 것이라는 데 획기적인 의의가 있었던 것이지요.
더구나 이전에는 시인이든 성우든 시를 보면서 낭독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시를 외워 암송한 것은 이 때가 처음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시 낭송 운동의 시원인 것이요 그래서 올해로 60년째가 되는 것입니다.
‘시인만세’는 그 20년 후 내가 한국일보사의 자매지 담당 사장에 취임하면서
‘주간한국’이 다시 내 소관이 되자 1986년과 1987년에 연거푸 속개됐고
시 낭송 경연도 부활시켰습니다.
특히 1987년의 제3회 대회는 전국 5대 도시를 순회하며 지방 ‘시인만세’로 열기를 돋운 후
서울 대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었고 서울 대회에는 입석까지 4천 명의 유료 관객이 운집하여
사상 최대의 시 낭송 이벤트였습니다.
전국적으로 연 105명의 시인과 1만여 명의 관객이 참여한 문자 그대로의 시인만세였지요.
당시 세종문화화관의 객석에는 노태우 민정당 총재, 정주영 현대 회장,
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합석하여 시 낭송의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이 ‘시인만세’가 열린 11월 1일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는 공동으로
이날을 ‘시의 날’로 선포하면서 그 기념식에서 ‘시인만세’의 공로로
내게 세계 최초의 ‘명예시인’패를 주었습니다.
세 차례의 ‘시인만세’가 시민들의 시 낭송 바람을 일으키고 나서
이것이 본격적인 시 낭송 운동으로 발전된 것은 그 후부터입니다.
내가 주간한국에서 손떼면서 ‘시인만세’가 다시 주춤해지자
이 중의 시 낭송 경연만을 따로 떼어 독립적으로 재생시킨 것이
소년한국일보의 김수남 사장이었습니다.
소년한국일보는 어린이 학습지 기업인 재능교육과 손잡고
1991년부터 ‘어린이와 어머니 시 낭송 경연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시는 어릴 때부터 암송해야 하고 이들을 지도하려면
어머니들에게 시 낭송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이 대회는 차츰 전 국민이 참가하는 대회로 확대되어
지금은 재능교육이 한국시인협회와 공동주최로 재능시낭송대회를 매년 꾸준히 이어오면서
작년으로 제35회를 맞이했습니다.
이 대회의 본선대회 수상자들에게는 한국시인협회가 인증하는
시낭송가증을 발급하고 있고, 재능교육은 이 시낭송가들을 중심으로 재능시낭송협회를 결성하여
전국에서 700여 명의 회원들이 시 낭송 공연 등 각종 시 보급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주역들이 바로 오늘 이 연수회에 모인 여러분인 것입니다.
나는 한국일보를 퇴사한 이후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5년간
재능교육에 협력하여 여러분과 함께 시 낭송 운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누가 시 한 펀도 외워 읊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다 하는가.”
이것이 시 낭송 운동의 캐치프레이스입니다.
시 낭송 운동은 한 마디로 전 국민의 시 개송 운동입니다.
국민 누구나 애창곡 몇 곡을 노래할 줄 알 듯이 누구나 애송시 몇 편을 외워
읊을 줄 알아야 한다는 캠페인입니다.
시는 예술 중에서도 최고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모든 예술에는 시가 다 들어 있고 또 시는 자체의 영분 속에 모든 예술의 영분을
다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술에 입문하려면 시의 문부터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시 낭송 운동은 전 국민의 시 개송 운동을 통한 전 국민의 문화인화 운동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정치민주주의에서 시작해서 경제민주주의를 거쳐
문화민주주의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나는 주장합니다.
문화민주주의란 전 국민이 골고루 문화예술을 창출하고
골고루 향수할 능력을 길러 모두 문화인이 되는 것이고
그 첫 걸음이 바로 시 개송 운동입니다.
시는 본래 노래입니다.
시가 노래이지만 낭송으로 노래되지 않는 시는 책장 속에서 잠자는 노래입니다.
시는 눈으로 읽는 기호의 문학이라기보다는 귀로 듣는 곡조의 문학입니다.
시는 소리 내어 읽어서 소리로 표현해야 비로소 완결되는 것입니다.
시 낭송 운동은 시 암송 운동이기도 합니다.
시 낭송은 반드시 외워 암송해야 합니다.
시를 몸 속에 내면화시켜야 목소리만이 아닌 온 몸으로 시를 읊게 됩니다.
피아니스트가 긴 소나타를 암보로 연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를 보면서 낭독하는 것은 연극 배우가 대본을 들고 무대에 나와 대사를 읽는 꼴입니다.
시가 노래라면 음악에는 작곡가가 있고 가수가 따로 있는데
왜 시 낭송은 시인만 있고 시낭송가는 없느냐. 이것이 나의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 낭송을 보급하자니 이것을 시범하고 지도할 시 낭송 전문가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경연 대회를 통해 이 전문가를 발굴하고 양성해서
이들에게 시낭송가의 칭호를 주기 시작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시낭송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2. 시 낭송 운동은 어디까지 와 있나
그러면 우리나라 시 낭송 운동은 6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확산되어 있느냐.
나는 이 자리에서 재능시낭송대회를 중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재능대회가 ‘시인만세’의 전통을 이어받아 정통성이 있는 데다
전국적으로 규모도 가장 크고 재능시낭송협회 또한 최초? 최대의 시낭송 단체로
대표성이 있기 때문일 뿐이고, 여러분은 잘 알겠지만
재능대회를 본받아 현재 시낭송 운동은 엄청나게 번져 있습니다.
코로나 직전까지의 집계로는 전국적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는 시 낭송 경연 대회만도
100여 개나 됩니다. 재능시낭송대회의 작년도 예선 참가자가 학생부, 성인부를 합쳐
620명이었는데, 다른 군소 대회의 참가자를 평균 100명 정도로 치더라도
시낭송 콘테스트에 연인원으로 연간 1만 명 이상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대회마다 또한 시낭송가를 배출해서 그 수만도 모두 수천 명에 이르고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시낭송단체 또한 100개가 넘습니다.
이렇게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시 낭송 경연 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시낭송 단체들이 활성화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구미에서는 포이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 하여 주로 시인들이 참여하는
공연 형식의 시낭송 대회가 있는 정도입니다.
시낭송가라는 전문 직종이 있는 것도 우리나라뿐일 것입니다.
한국은 단연 시낭송의 세계 최대 강국입니다.
시 낭송 운동이 외형적으로 이렇게 팽창했다면
이 운동 60년의 내실적 성과는 어느 정도냐.
시낭송 전문가들의 낭송 수준은 얼마나 향상되었으며
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호응은 얼마나 상승했느냐.
우리나라가 시낭송의 최대 강국이라고 호언했지만
안타깝게도 시 낭송 대회와 시 낭송 단체 주변의 애호가들이나 일부 시인들 외에는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이 별로 없습니다. 그 만큼 일반 시민들의 관심 밖이라는 말입니다.
외관에 비해 시 낭송의 위상은 너무나 낮은 것입니다. 이것은 왤까요.
여러분을 비롯한 시낭송 운동 참여자들은 대부분 시 낭송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시낭송가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느 시 낭송 단체에 소속되어
매년 정기 시 낭송 공연을 하고 각종 행사에 초청을 받거나 학교 등으로 직접 찾아가는 공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얼마나 모이고 그들의 호응은 어떻던가요.
여러분은 으레 “반응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습니다.
의례적인 박수야 조금 나왔겠지요. 내가 하도 실망스러워 하니까
여러분은 왜 나만 여러분의 시 낭송에 비관적이고 비판적이냐,
대관절 나는 무슨 기준으로 시낭송을 평가하기에 늘 불신하느냐고 불만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시 낭송을 하고난 뒤 관객들의 “브라보!” 소리나 “앙코르!”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립 박수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가수가 노래를 하면 대개의 경우 “브라보!”나 “앙코르!”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시낭송의 라이벌은 노래입니다. 내가 시낭송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노래입니다.
내가 기대하는 시 낭송의 수준은 노래의 수준인 것입니다.
재작년 11월 1일 ‘시의 날’에 한국시인협회 주최의 시 낭송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시인들 외에 시낭송가들과 유명 배우들도 출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노래를 잘 하는 한 여배우가 시를 읽고 나더니
갑자기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날의 어느 시 낭송보다 이 노래에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고
“앙코르!”가 연발되었습니다. 노래 앞에 시 낭송이 완패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시낭송은 영원히 노래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일까요.
시 낭송을 노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나의 소망은 허망한 꿈일까요.
몇 년 전에 서울시 주최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음악회에
재능시낭송협회의 ‘남해찬가’라는 시낭송 공연이 초청되었습니다.
이것은 김용호 시인이 이충무공의 일대기를 엮은 장편서사시 중
임진왜란 부분만 발췌해서 5명의 시낭송가가 암송으로 윤송하는 15분짜리 공연이었습니다.
‘남해찬가’ 출연은 바로 직전에 한 유명 가수가 노래를 부른 다음이었는데
낭송이 끝나자 요란한 박수가 나왔고 관객 중 누군가가 “노래보다 훨씬 감동적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시 낭송이 노래를 이긴 것입니다. 시 낭송이 노래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유명한 인기 가수들은 수만 명의 청중을 한 자리에 모으지만
시 낭송은 몇 백 명이 고작인데 경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겠지요.
러시아의 시인 옙게니 옙투센코는 자작시를 압도적인 표현력으로 낭송하는
탁월한 시낭송가로 유명했습니다. 이 시인은 모스크바의 축구경기장 같은 데서
시 낭송으로 수만 명의 관중을 열광시켰습니다,
1991년에는 20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시낭송가도 얼마든지 대스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작시를 낭송하는 옙투센코
3. 시 낭송 얼마나 향상되었나
시 낭송이 관객들의 호감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이 지금 시낭송을 어떻게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60년 전의 첫 시 낭송 콩쿠르 이후 시 낭송의 패턴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청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해 왔을까요.
시 낭송 경연의 낭송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첫 콩쿠르는 녹음이 발달되지 않은 때여서 소리로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 콩쿠르를 기획하면서 시낭송의 견본 삼아 내가 한 레코드사에 제의하여
당시의 인기 성우들이 우리나라 명시들을 낭송하는 음반을 제작했고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낭송 레코드로 남아 있습니다.
이 레코드를 들어 보면 당시 성우들의 낭독 스타일뿐 아니라
이것을 본딴 콩쿠르 참가자들의 시낭송 경향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들어 보시지요,
김소월 시인의 ‘초혼’을 한 성우가 낭독한 것입니다.
시 낭송 콩쿠르 참가자들의 낭송은 1987년의 제3회 ‘시인만세’ 때
전 공연이 녹음되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 낭송은 첫 콩쿠르에서 20년 뒤이고 지금으로부터는 40년 전의 것입니다.
그 중에 요즘도 경연대회에 자주 등장하는 유치환 시인의 ‘행복’을 선택해 보겠습니다.
이 낭송은 전국 예선에 참가한 536명 중 24명이 본선대회 무대에 올라 우수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이 낭송은 음조가 너무 일정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낭송들과 비교해도 과히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시 낭송이 그 후로 40년 동안 무엇이 크게 달라졌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시낭송은 어떤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동안의 재능시낭송대회 본선대회 대상 수상자들 낭송을 한 자리에 모아 보겠습니다. 이들의 낭송을 연달아 들어 보면 현재 우리나라 시 낭송의 전반적인 경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좀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면 시를 잘못 읊고 있는 것이고 잘 읊고 있다면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이 네 편의 낭송을 무대에 올려놓고 공연을 한다면 “브라보!” “앙코르!”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아까 내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조가 천편일률적이면서 별다른 정감도 없고 무슨 감동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이 낭송들이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여러분은 알겠는지 모르지만 나는 잘 모르겠네요.
속삭였다가 외쳤다가 감정의 표정이 아주 다채로우면서 드라마틱하게 시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상 수상자들의 낭송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모든 시가 이렇게 낭송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낭송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4. 시낭송 패턴의 변천
시 낭송 운동 60년 동안 시 낭송자들의 낭송 패턴은 그 변천을 대체로 3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기는 성우들의 낭송 스타일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시 낭송에 참여하면서 당시에는 성우들의 낭독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모방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아까 들었듯이 성우들은 발성이 명료해서 시어의 전달은 잘 되지만 감정이 차분하기만 합니다. 생화 같지 않고 조화같이 들립니다. 시는 천천히 읊어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템포도 처집니다. 일정하게 완만한 이런 템포로는 다양한 감정을 다감하게 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시낭송가들이 출현하면서 이에 반발하여 시를 더 감정적으로 낭송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제2기 시대입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이 감정이 금방 팽창하여 감정 과잉이 되어 버렸습니다. 감정을 살리라니까 감정을 조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시 낭송은 이상한 ‘쪼’가 생겨 부자연스러워지면서 듣기에 청승맞고 징그러워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일반 시민들이 시라면 일단 경외감을 가지면서도 시 낭송 전문가들의 낭송이라면 정떨어져 외면해 버리는 것은 여기서 생긴 거부감입니다. 이 부자연스러운 낭송의 유행이 시 낭송의 발전을 저해시켜 온 가장 큰 요인입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모색한 시 낭송의 새로운 길이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고 이것이 지금 와 있는 시 낭송 운동의 재3기입니다. 한 마디로 시 낭송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정을 억지로 짜내서 꾸미지 말고 자연적으로 발로되는 감정으로 감동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연스러워진다면서 감정의 모든 색채를 다 표백시켜 버리고 무미건조해졌습니다. 시 낭송에 대한 혐오감은 없을는지 몰라도 친근감도 전혀 없습니다. 감정 과다증에 질겁을 하고 달아났던 청중들이 이번에는 이런 감정 결핍증에 실망하여 어찌 돌아올 엄두가 나겠습니까.
여러분은 대부분이 이 시 낭송의 자연주의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워라는 말은 그저 잔잔하기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 과잉이 되는 것은 그 감정이 가짜이기 때문에 헛부풀어지는 것인데 그 감정이 진정이라면 고함을 질러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나의 시 낭송 제1계명은 “시를 시처럼 낭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연극을 연극처럼 연기하면 신파극이 되어 버립니다. 연극처럼 보이지 않아야 진짜 연극인 것입니다. 시도 의식적으로 시처럼 낭송하려고 하면 자연스럽지 않게 됩니다. 시를 억지로 읊지 말고 저절로 읊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의 박수도 억지로 나오지 않고 저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시 낭송도 연기입니다. 연극에서는 감정을 절제하라고 합니다. 시 낭송 역시 자연스럽자면 감정을 절제해야 합니다. 부자연스러운 것은 감정의 과장이나 과잉 때문입니다. 이것을 억제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를 하려면 충분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절제해야 하는데 오늘의 시 낭송들은 절제한다면서 처음부터 감정을 다 비워 버리고 있습니다.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서 돈을 절약하겠다는 것이지요.
나태주 시인이 재능시낭송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보고는 “나는 누가 시를 잘 낭송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더라”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시 낭송들이 차별하기 어려운 것은 아무 감정도 어떤 감동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 낭송이 밍밍한 데는 낭송시의 선택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시 낭송은 시의 감동을 낭송자가 중개해 청중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낭송자 자신이 먼저 감동하고 청중도 그 감동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라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대체로 자신도 감동이 없는 시들을 들고 나와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 감동 없이 낭송하고 그러니까 당연히 청중들도 아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독하는 시는 수십 번을 읽어 씹고 또 씹으면 단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낭송시는 일과성이라 아무리 명시라도 한 번 못 알아들으면 시의 뜻은 맹탕입니다.
시는 본래 수수께끼입니다. 시는 시인의 신성한 광기에서 나오는 것이고 은유와 상징과 암시가 본령이기 때문에 쓰기보다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만큼 낭송시는 일단은 그 중에서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시를 고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는 시 한 편을 지으면 무학인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한테 들려 주어 못 알아듣는 대목이 있으면 반드시 고쳤다고 합니다.
낭송시의 시대적 변화에도 시 낭송의 애로는 있습니다.
시 낭송 경연 출전자나 시낭송가들의 낭송시가 왕년에는 널리 애송되는 이른바 명시들이 주류였는데 근래에는 거의가 새로 등장하는 신진시들입니다. 낭송자들로서는 이미 닳고 닳은 시들은 신선감이 없는데다 더 잘 낭송하기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고, 새로운 시들이 자꾸 발굴되고 등장 시인들이 세대 교체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문명이 진보할수록 시는 쇠퇴한다고 합니다. 현대시로 올수록 낭송하기 좋은 시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얼른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리듬감도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시 낭송 경연에 시인별로 시가 가장 많이 등장한 시인은 박두진 시인입니다. 그의 시가 비교적 평이하고 가장 리드미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회마다 그의 시가 반드시 끼였고 수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재능대회의 본선에는 단 한 편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5. 감동을 잃은 시 낭송
시란 무엇이냐. 나더러 말하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표현한 것이 시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시인이 느낀 감정을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말로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 시입니다. 시 낭송은 문자로 된 시로는 미처 다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을 음성의 감정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시 낭송은 선동입니다. 시는 낭송으로 청중의 감정을 동요시켜야 합니다. 시의 감정에 바람을 넣어 그 바람이 청중의 감정을 바람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동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의 시 낭송이 감동적이지 못한 것은 자신이 감동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 감동인지, 감동 자체에 대한 감각이 빈약하고 감동에 대한 감응판이 둔감합니다.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 시의 썩은 물에 뜨는 달을 읊조리며 울컥하지 않는 사람은 시를 낭송할 자격도 없고 들을 자격도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소동파의 ‘복산자’라는 시에 나오는 “이지러진 달이 성긴 오동나무에 걸려 있다”(缺月掛疏桐)라는 구절을 천하의 명구라고들 하지만 우리나라 샛강 바닥의 달이 훨씬 감동적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이런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음악이라고 합니다. 멜로디와 리듬만으로도 가장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악기 중에서는 무슨 악기가 가장 감동적이냐. 옛말에 “줄보다는 대가 낫고 대보다는 육이 낫다”(絲不如竹 竹不如肉)고 했습니다. 거문고 같은 현악기보다는 피리 같은 목관악기가 좋고 목관악기보다는 육성이 좋다는 뜻이죠. 사람의 목소리가 천하제일의 악기라는 것입니다. 육성의 시낭송이 노래와 마찬가지로 가장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낭송시는 일단 이해하기 쉬운 시가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시를 낭송하는 것은 꼭 시의 뜻만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뜻만 알려면 목독이 훨씬 확실할 테죠. 시의 감동을 낭송이 운반하는 도구는 주로 시의 리듬입니다. 시 낭송이 노래인 것은 그 리듬 때문입니다. 여기에 노래의 가사처럼 시의 뜻이 실려 듣는 사람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시 낭송자는 자신이 먼저 감동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감동은 꼭 시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서 오는 것만도 아닙니다. 아무 가사가 없는 기악곡이 얼마든지 감동적인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우리나라 시 중에서 가장 애송되는 시의 하나가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입니다. 이 시는 축자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면 뜻이 아주 모호합니다. 다만 우수적인 시구들이 모자이크처럼 형성하는 애상적인 분위기가 탁월한 리듬을 타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박인환 시인이 가장 좋아한 시인이 오장환이었는데 그는 리듬의 달인이었습니다. 나도 고교 시절 “어머니는 무슨 필요가 있기에 나를 맨든 것이냐!” 라는 당돌한 구절로 시작되는 오장환 시인의 시 ‘향수’를 노래하듯 고성방가하며 다녔지요.
리듬의 구성 요소는 박자 외에 음의 고저와 강약입니다. 처마 끝에서 똑 똑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는 리듬이 있지만 가만히 흐르는 강물은 리듬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시 낭송은 리듬이 약합니다. 여러분의 시 낭송이 청중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이 리듬 감각의 부족 때문이기도 합니다.
리듬은 원시인에게도 있는 만인공유의 감각입니다. 리듬이 있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합니다. 리듬은 마력이 있고 최면작용을 합니다. 어린 아기들이 “잘 자라 내 아기”하고 자장가를 부르면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은 그 노랫말을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노래의 리듬 때문인 것입니다.
시 낭송에 관한 한 한국시는 유포니(euphony:듣기 좋은 음조)에 약점이 있습니다. 한시나 서양시 같은 두운이나 각운이 없는데다 유려한 유성음(ㄴ, ㄹ, ㅁ, ㅇ) 대신 까칠한 무성음(ㅋ, ㅌ, ㅍ)의 자음이 종성(받침)으로 끝나는 낱말들이 많아 낭송의 흐름이 덜그럭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되기 쉽습니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가 모음으로 끝나는 낱말의 연속으로 음악을 듣는 듯하고 일본어도 받침이나 복모음이 없습니다.
가장 리듬감이 좋다는 박두진 시인의 경우, 많이 낭송되어 온 시 ‘청산도’는 마지막 연이 이렇습니다.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너머 골 너머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받침이 있는 낱말들의 대부분인 밑줄 친 부분들은 모두 유성음이기 때문에 이 연속을 소리 내어 읽으면 물 흐르듯 흐르는 음률이 춤추듯이 출렁이는 것입니다. 한국시의 약점을 절묘하게 보완한 것입니다. 대개 무의식적으로 읊고 있지만 시 낭송자는 이런 음운 구조에 민감해야 이 음률을 충분히 살릴 수 있습니다.
6. 시 낭송이 기립박수를 받으려면
시 낭송 운동 60년이 된 지금 이 운동이 스스로 시 낭송을 자해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분한 일입니다. 그 동안에 시낭송가만도 수천 명을 탄생시켰다고 자랑처럼 내세웠지만 바로 이 때문에 시 낭송이 아직도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시 낭송 운동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책임한 시 낭송 경연 대회들이 쏟아져 나와 무자격의 시낭송가들을 무더기로 양산함으로써 이들이 시 낭송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이들일수록 더 열심히 여기저기 역겨운 시 낭송의 악취를 뿌리고 다녀 대중들은 시 낭송이라면 코를 막듯 귀를 막고 달아나고는 다시는 안 쳐다봅니다. 우리나라가 시 낭송의 최강국이라는 사실조차 대부분의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도 이 거리감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시 낭송이 일반 국민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려면 먼저 여러분의 눈높이부터 높여야 합니다. 지금의 낭송 수준으로는 국민들을 공감시키기에 터무니없다는 자각과 자괴심을 가져야 합니다. 경연 대회에서 일단 시낭송가증을 받으면 그것으로 자신의 시 낭송이 최고 수준인 줄로 착각하는 데서 시 낭송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시낭송가로서의 수련과 노력이 태부족입니다. 대부분 직장인이거나 가정주부들이라 생업이 되지 않는 시낭송에 전념할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취미 생활로 즐기기 위해서라면 굳이 시낭송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시인이 밤을 새워가며 시를 쓰는 것은 꼭 시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소리꾼들이 폭포 앞에서 폭포 소리와 싸우며 목에서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아픔 없이는 시낭송가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시낭송가가 절대로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시 낭송이 미진한 것을 극복할 방법은 다양한 시를 수없이 읽는 것입니다. 그 안에 다양한 감정과 다양한 리듬과 다양한 감동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경연 대회에 나오기 위해 익힌 시 두세 편만 달달 외우고는 상 타고 나면 그것으로 그칩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명시들을 모운 ‘당시 삼배 수’라는 책의 서문에 “시를 읊을 줄 모르는 사람도 시 삼백 수를 숙독하면 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시 300편을 외워야 합니다. 그런 각오라야 합니다. 숙독만 할 것이 아니라 외우고 있어야 합니다. 애써 외울 생각부터 해서는 안 되고 저절로 외워질 때까지 소리 내어 읽어야 그 시가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시 낭송 스타가 탄생해야 합니다. 스타가 나와 시 낭송의 품격과 가치를 도약시켜야 합니다. 스타가 되자면 연기의 기만 있어서는 안 되고 광기 같은 ‘끼’가 있어야 합니다. 온 몸에서 감동의 전율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런 스타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이비 시낭송가들이 자연도태될 것이고 시 낭송 운동은 개가를 부를 것입니다.
앞에서 들어 본 재능시낭송대회 대상 수상자들의 낭송은 신인들을 통한 요즘 시 낭송의 경향을 견주어 본 것일 뿐, 어느 정도의 수준 이상인 기성 시낭송가들이 영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시낭송 운동 60년이 말짱 허무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시 낭송 운동의 장래가 전혀 무망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내 수중에 있는 시 낭송 중 시낭송가들의 낭송 두 편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낭송은 박두진 시인의 ‘갈보리의 노래’입니다.
내가 20대 초년 시절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20명 남짓한 편집국원 전원이 모인 신입 사원 환영회가 있었습니다. 차례로 돌아가며 노래를 시키는 이 술자리에서 나는 노래 대신 시를 암송했습니다. 노천명 시인의 ‘들국화’라는 시였습니다. 뜻밖에도 환호성이 쏟아졌고 뒷날 대만해협 포격전에 특파되었다가 금문도에서 실종한 최병우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이 나를 얼싸안았습니다. 생소한 돌출이 이색적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시 낭송이 노래를 제압한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시 낭송 운동은 사실상 이 때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 낭송은 본시 노래인 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노래를 참 잘 부릅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 만큼 전 국민이 가수인 민족입니다. 시 낭송의 노래인들 어찌 가수의 노래만큼 못 부르겠습니까. 시 낭송 운동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독보적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전 국민이 저마다 시를 줄줄 외우는 나라가 되어, 이 한류 문화의 시대에 우리나라의 시 낭송이 세계 최고의 새로운 문화 유형으로 빛나도록 여러분이 선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명예시인/한국일보 고문, 주필. 편집국장, 주불(駐佛)특파원 역임/
부산고~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졸/욕지도 産>